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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이야기] 한국 전통복식의 발자취

by 여름_- 202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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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한국 전통복식의 발자취'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시길 바래요:)

우리나라 복식의 특징


-기본 복장 : 저고리 + 바지
-삼국시대 고유복식기 -> 통일신라 -> 고려시대 중기 -> 여말선초 -> 조선 중기
-조선중기를 제외한 세 차례의 변혁은 모두 외래 복식 요소에서 영향 받음
-조선중 후기에 전통한복 양식이 만들어짐
-은은한 색조 또는 강렬하게 대조되는 색상과 흐르는 듯한 선의 조화 / 남자 복식 점잖음 여자 복식 정숙함 / 유교적인 이념이 복식미로 승화됨

상고시대 복식

-오늘날까지 바지 + 저고리 + 포 로 2천년 간 구조상 변함 없으며 관모(冠帽)를 소중하게 여김
-저고리는 엉덩이 선까지 내려가 기장이 긴 편이었으므로 허리를 조르기 위해 혁제(革製)나 포제(布製)와 같은 띠를 착용함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지목되는 금관(관모) 착용 / 이밖에 목걸이, 팔찌, 지환(指環)을 끼고 발에는 버선을 신고 짚신이나 가죽신을 신음

천마총 금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금관(金冠))]

*금관(관모)
-주로 착용자의 신분을 나타내거나 특별한 의식을 집행할 때 그 권위를 상징하기 위하여 제작됨
-당시 왕자(王者)가 샤먼을 겸하고 있었으므로 무관(巫冠)에서 연유한 것으로 추측됨
-그러나 일반적인 관모는 백화모(白樺帽)로서 몽고나 고구려의 절풍(折風)이나 신라의 백화모, 일본의 상고 관모가 비슷한 유형을 가지고 있음

 

고구려시대

특징: 1) 북방계 이부형식(남녀 모두 저고리 차림) 2) 기마유목민족
-남녀 모두 저고리차림
: 바지저고리를 입은 남자
: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자(상의하상) 치마 길이가 길며 주름이 잡혀 있고 도련에 선이 있음 / 바지를 입은 여자들도 많이 등장함
: 저고리는 엉덩이 선까지 내려가 기장이 긴 편이었으므로 허리를 조르기 위해 띠를 맴
: 곧은 깃, 좁은 소매 / 섶과 도련, 소매 끝 등에 선이 있음
: 바지는 밑에 당(밑바대, 무)이 있는 바지인 궁고로 가랑이 끝을 묶고 있음

-포
: 남자의 바지저고리나 여자의 치마저고리 위에 덧입음
: 상류층 여성이 주로 착용하여 보편적인 복식은 아님
: 곧은 깃, 좁은 소매와 큰 소매가 섞여 있음 / 깃과 도련 소매 끝에 선이 있음

-관모
: 머릿수건인 , 고깔 모양인 절풍등이 있음 / 벼슬아치들은 주로 새 깃을 꽂음

무용총 널방 오른쪽에 그려져 있는 수렵도이다. 고대사회에서 사냥은 군사 훈련과 제의의 성격도 겸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따라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수렵도는 안악 1호분, 덕흥리벽화고분, 약수리벽화고분, 장천1호분, 통구12호분 등 다수의 고분에서 발견된다. 이들 그림은 고구려에서 행해지던 사냥의 종류와 방법, 사냥 대상 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개인)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고구려(高句麗))]


고유복식기 : 통일신라시대 ~ 고려시대

통일신라 : 신라 진덕여왕, 김춘추의 외교로 당나라의 군사지원을 약속 받으며 내정간섭 받음
: 진덕여왕 3년 의관을 중국식으로 하는 중조의관제 발표
: 당의 공복 모방(복두, 단령, 반비, 배당, 표 등)
고려
고려 복식의 이중구조 : 당제에 따른 복식 + 고려의 풍습에 맞게 국속화 한 복식
원나라의 침략 받으며 몽고풍 영향 받음
(몽고식으로 머리를 땋고 몽고복을 입음)
(신부 혼례복의 족두리, 도투락댕기, 철릭 등)

고려의 몽고 복속기가 끝나면서 새로운 복식 전개
: 고려 우왕, 명나라 복제를 따라 공복제도 재정비
(사모와 단령 착용, 띠로 직품의 높낮이를 나타냄) 사모단령 제도 -> 조선시대 사모관대 -> 지금 전통혼례의 신랑 예복
: 고려 공민왕, 공복입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갓)
: 송의 성리학 도입 -> 조선, 친명정책을 내세운 신진사대부가 정권 잡음 : 명의 제도를 본뜬 고려의 사모단령 답습, 유교적 도덕관과 의례사상을 통치이념으로 강조
: 솜의 전래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 가져옴, 베와 모시를 주축으로 했던 이전의 복식 풍습이 변하는 계기가 됨

 

조선시대 : 전통한복 양식의 형성기

-포 : 남자 복식에서 일반화 됨 / 여자 복식에서 사라짐
-저고리 : 저고리의 띠가 사라지고 고름과 매듭단추가 생김
-깃 : 동정이 생기고 선이 사라짐
-조선 중기 ~ : 여자 저고리 짧아지기 시작

조선시대 복식 조선 전기 후기 큰 차이 있음
조선 전기 - 임진왜란, 병자호란 - 조선 후기

>중국, 명 청 왕조가 교체되는 등 국제 정세 변화
만주족이 세운 청이 한인들에게 변발과 호복 강요 -> 중국은 복식사상 가장 큰 변혁의 시기 맞음
송 명으로 이어졌던 한복 사라지고 만주족의 치파오 일색이 됨. 치파오 - 현재 중국의 옷
그러나 조선에까지 영향은 없음 조선 중기 복식 변동의 계기
-두 차례의 전란(임진왜란, 병자호란)
-사회경제적인 변화
이앙법 보급 -> 농업 발달, 상품 화폐 경제가 본격적으로 발전, 부를 축적한 평민들의 적극적인 신분 상승, 양반을 사고 파는일이 즐비하게 되면서 신분제도 동요, 경제적 여유가 생긴 하층민들이 상류계층의 복식 사치 모방
- 근대적 사회로 나아감에 따라 시민의식, 현실 탐구하고자 하는 실학 태동 : 새로운 사회 분위기 -> 새로운 복식 탄생
영조, 정조때 정점, 전통한복 양식의 성립기

<야금모행>, 《혜원 전신첩》 (18세기 후기)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어물장수 魚物장수 (18세기 후반 ~ 19세기 전반경)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남자복식
-사대부들이 일상복에 착용하던 대표적인 관모인 갓, 관모의 발달
(삿갓, 방립, 전모 / 패랭이, 초립, 죽립, 전립, 정거지, 흑립(조선시대에 국모 ‘나라의 모자’ - 양반 사대부의 징표 -> 그 형태나 장식이 과시적으로 발달, 주립, 백립)
(갓에 포함되지 않지만 갓과 한 벌을 이루는 망건, 탕건)
(감투, 유건, 사방관, 동파관, 장보관, 충정관, 와룡관)
-당시 사대부들을 표상하는 전형적인 옷차림: 큰 갓 + 포
-도포 중치막, 창옷 등 다양한 포로 발전
: 도포는 가장 격이 높은 옷으로 천민들은 입지 못함
곧은 깃 넓은 소매에 무 뒷자락을 트고 그 위를 전삼으로 가리고 있으며 가슴 높이에 맨 화려한 색깔의 세조대를 장식
: 중치막 깃과 소매 모양이 도포와 같으나 양 옆이 터진 앞 두 폭, 뒤 한 폭의 세 자락 옷
관복의 받침옷이 되는 등 도포보다 격은 낮지만 세조대와 광다희를 묶어 외출할 대 겉옷을 입음
: 창옷 기본 소재는 중치막과 같으나 소매가 좁음
조선 중기 이후 계층 연력 장소 관계없이 두루 입음 : 국속 포 모두 선이 단순하고 색깔이 흰색과 옥색 위주이며 가슴 아래에 닿을 정도로 늘어진 갓끈 세조대를 장식
: 포는 헐렁한 바지저고리에 철릭 등 받침 옷 껴입기 때문에 그 모습이 중후하고 여유있어 보임

여자복식
-노리개 - 삼국시대에 있다고 할 만큼 오래 된 우리 고유의 장신구
-상경하중(짧은 저고리 + 풍성한 치마)
: 장대해진 치마아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색깔이 다른 삼회장저고리를 입고나 길게 늘인 겉고름 속고름 또는 노리개를 다는 등 장식 강조
: 조선 중후기를 지나면서 여인들의 가체는 점점 커졌고 그에 따라 머리 장식도 비녀 뒤꽂이 떨잠 첩지 등으로 화려해짐
-> 영정조대 가체금지령 / 순조 30년 다소곳한 쪽진머리, 차분한 꼬리치마

*참고자료
유송옥 김동욱, 「복식(服飾)」,「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개정(1997년)
이경자 외, 『우리옷과 장신구』, 출판지: 열화당,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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