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디자인 제63호 기획연재 한국 미학 탐구(Ⅰ) 금속공예 글 최광진(한국미학자) 스크랩
최광진은 현대미술 비평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 호암미술관(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고, 홍익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냈다. 현재 유튜브로 〈최광진의 미학 방송〉을 운영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현대미술의 전략』(2004), 『한국의 미학』(2015),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1: 신명』(2018),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2: 해학』(2019), 『미학적 인간으로 살아가기』(2020), 『기교 너머의 아름다움』(2021), 『창조적 인간으로 살아가기』(2023) 등이 있다.
한국 공예 미학의 필요성
한국의 공예는 유구한 한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뿌리 깊은 전통을 갖고 있으며 금속공예, 도자공예, 목공예 등에서 독자적이고 주목할 만한 예술 문화를 일구어왔다. 이러한 빛나는 전통을 시대정신에 부합하게 계승하는 것은 오늘날 모든 공예인의 과제이고, 이를 위해서는 전통 공예에 담긴 정신과 미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걸 창조하는 '법고창신'의 지혜는 굳어진 양식을 답습해서 가능한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신과 미의식을 계승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에서 공예에 관한 연구가 주로 문양이나 기법 계승에 치우친 면이 있고, 미학적 접근이 다소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전통 공예에 담긴 독자적인 미학을 탐구하고 거기에서 한국인의 미의식을 찾아낼 수 있다면 오늘날 잃어버린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는데 도움이 되고 나아가 국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자연환경과 언어를 공유하며 살아온 민족은 식물의 종자처럼 일정한 정체성을 공유한다. 물론 한 국가의 문화는 항상 외래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개나리가 계절이 바뀔 때 진달래로 변하지 않듯이, 변치 않고 유지되는 어떤 종자의 속성이 있다. 만약 외래문화의 영향이 지나쳐 문화적 정체성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면 그 민족의 존립 이유도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은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서양 문화를 너무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유전자 조작 수준의 부자연스러운 접붙이기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표면적으로 경제 부흥을 일구어냈지만, 민족의 정체성은 의식주 문화뿐만 아니라 민족의 얼과 정신마저 잃어버린 듯하다.
이러한 반성은 모든 분야에서 필요하며,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공예 분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더구나 요즘처럼 인터넷과 정보 기술의 발달로 지구촌이 하나로 연결된 시대를 살면서 민족 문화의 정체성이 어느 시기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민족 문화의 독자성이 곧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서울이 뉴욕과 독같아진다면 외국인들이 서울에 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외국을 여행하는 것은 다른 환경과 문화를 체험하기 위함이며, 이를 통해 틀에 박힌 관습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독일 철학자 헤르더의 "대개 가장 위대한 작가는 가장 민족적인 작가였다"라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시대정신과 민족 문화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 없이 좋은 작가가 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균제된 신명의 역동적 힘
생활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는 공예품은 순수 예술과 달리 기능성을 충족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양식적인 제약을 받는 다. 그래서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표현이 절제되고 단순화와 패턴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한국의 전통 공예 는 엄격한 기하학적 대칭이나 기계적인 패턴화를 피하고 우연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표현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특징에 대한 미학적 이해가 없는 사람은 이것을 미완성이나 기교의 부족으로 폄훼하기도 하지만, 일본인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무기교의 기교’라고 말했다. 기교가 부족하다는 것과 ‘무기교’, 즉 ‘기교가 없다’는 말은 차원이 다르다. 기교가 부족하다는 건 기교를 부리고 싶어도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지만, 기교가 없다는 건 기교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기교 이상의 더 중요한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것 이다. 그것은 오히려 기교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교이고, 기교로 포착 불가능한 근원적인 힘에 대한 갈망을 반영 한 것이다.
사실 어떤 대상을 정교하고 치밀하게 표현하는 것보다 투박하고 생동적으로 표현하는 게 더 어렵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우연적이고 초월적인 힘의 개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자는 ‘대교약졸’(大巧若拙), 즉 “뛰어난 기교는 오히려 졸렬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의 전통 공예는 이처럼 ‘대교약졸의 생명력’을 표현 하려는 의지가 두드러진다. 나는 이러한 의지가 한국인 특유 의 미의식인 ‘신명’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미의식으로서 ‘신명’이란 인간과 만물에 보편적으로 내재한 자유로운 힘이며 연속적으로 변해 가는 생명의 파동이다. 이 러한 힘과 파동은 어떤 정형화된 틀 안에 결코 가둘 수 없기 에 비균제성과 즉흥성은 신명 예술의 주도적인 특징이고, 그 것은 주로 유려한 선으로 표현된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이러한 한국 미술의 선적인 특징을, 형태를 중시한 중국 미술이나 색을 중시한 일본 미술과 다른 특징으로 주목하며 그것이 ‘비애’의 정서를 담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그의 시각이 그가 한국의 비극적인 식민지 시대를 보고 내린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대로 한국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반도 국가라는 특징으로 인해 주변국의 많은 침략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선적인 특징은 동아시아를 호령했던 고구려부터 내려오는 뿌리 깊은 전통이다. 따라서 고구려 벽화나 고대 공예품에서 보이는 한국 특유의 곡선은 비애가 아니라 신명의 힘을 양식화한 것이라 고 할 수 있다.
고대부터 하늘과 태양을 숭배한 한국인들은 인간 안에 내재한 신명의 힘을 끌어내어 경직된 현실에서 생긴 문제와 역경을 슬기롭게 이겨내고자 했다. 한국인들은 일하고 노는 목적이 바로 신명에 있다고 보았기에 지금도 여전히 “신(명)나 게 일하자” 혹은 “신(명)나게 놀자”라는 말을 사용한다. 놀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한번 신이 나면 말릴 수 없는 민족이다.
한국의 전통 춤과 음악은 샤먼처럼 이러한 신명을 끌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선율 역시 신명의 역동적인 힘을 양식화한 것이다. 이러한 미의식이 고대 공예품에도 이어져 한국 공예는 세계 공예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비균제된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것은 사실적 재현보다 힘의 표현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현대적인 감성이라고 할 수 있다.
금동장식: 불꽃처럼 타오르는 신명의 문양
일반적으로 공예에서 사용하는 문양은 이집트의 로터스 (lotus) 문양이나 그리스의 아칸서스(acanthus), 그리고 팔메 트(palmette) 문양처럼 식물 형태에서 착안한 것이다. 팔메 트 문양은 기원전 4세기 무렵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때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에까지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동양에서는 팔메트 문양을 인동문(忍冬紋) 혹은 당초문(唐草紋)이라고 하는데, 한국 미술에 나타나는 문양은 당초문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비균제된 생명력으로 자유롭게 변형시켜 회화적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러한 특징은 식물의 시각적 외형을 패턴화한 게 아니라 신명의 역동적인 힘을 포착하기 위함이다. ‘율려’(律呂)로서 작용하는 신명은 음과 양, 밀물과 썰물, 낮과 밤, 한기와 열기, 정과 동 등의 상반된 성질을 리듬 있게 조화시키며 끊임 없이 변해 간다. 그러기에 문양이 특정 식물에 국한되지 않고 〈진파리 1호분 고구려 벽화〉1 에서처럼 구름과 바람, 불꽃, 연 꽃, 동물 등의 이미지로 변하며 어떤 특정한 개체로 고정되기 이전의 잠재적인 힘을 표현하고 있다.
미술공예운동의 선구자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 ~1900)은 근대의 산업화와 기계화로 획일화되는 미술을 구하고자 “모든 아름다운 미술 작품은 의도적이든 우연적이든 자연의 형태를 닮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힘입어 서양의 아르누보 운동은 기계화에 대한 저항으로 덩굴 풀이나 담쟁이 같은 식물의 곡선을 조형화했지만, 결과적으 로는 인위적인 패턴화와 화려한 장식으로 나아갔다.

이에 비해 평양의 진파리 7호분에서 출토된 〈해뚫음무늬 금동장식〉2 은 베개의 양쪽 마구리 장식으로 보이는데, 마치 덩굴 같기도 하고 타오르는 불꽃 같기도 한 곡선들이 오른쪽 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바람과 불꽃의 온기가 촉각을 자극하고, 비대칭의 율동미가 매우 아름답고 생동감 넘친다. 또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중앙의 원 안에 삼족오가 세 발 로 앉아 있고, 그 위에 비슷하게 생긴 봉황 한 마리가 날갯짓 하고 양쪽 하단에는 용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식물과 동물, 불과 구름, 구상과 추상 등이 하나로 어우러진 이 작품은 구상의 지루함과 추상의 공허함에서 벗어나 대립적인 속성이 율동적인 선으로 접화하고 있다. 조화가 비슷 한 것들의 어울림이라면, 접화는 태극처럼 상극의 어울림이다. 또한 음악적 리듬과 힘찬 율동이 느껴지는 이 작품의 선들 은 하나의 존재로 갇히지 않고 어떤 것으로든지 변할 수 있을 것 같은 열린 잠재력을 보여준다. 패턴이 있는 것 같지만 일정 하지 않고 규칙이 있어 보이지만 자유롭다. 이러한 형태를 보고 있노라면 대뇌의 이분법인 경직된 사고가 해체되고, 억압된 몸의 생명력이 깨어나는 듯하다. 나는 이것을 구체적인 식물을 단순화한 팔메트나 당초문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에 보 편적으로 내재한 신명의 힘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양 대성 구역에서 출토된 〈불꽃뚫음무늬 금동관〉3 은 머리에 띠처럼 돌리는 방식인데, 팔메트 문양 같지만 어느덧 화염문으로 변해 불꽃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어 비균제된 생명력이 느껴진다. 한국인들은 정제되고 균제된 형태보다 이처럼 비균제된 생명력에서 ‘멋’을 느낀다. 서양의 ‘미’가 정제 된 조화에 기반한 것이라면, 한국의 ‘멋’은 이처럼 정제될 수 없는 역동적인 힘에 기반한 것이다.
미에 기반한 서양의 티아라는 예외 없이 좌우대칭의 엄격한 균제미가 특징이다.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결혼 하는 딸에게 선물한 〈헤센의 딸기잎 티아라〉는 식물 문양이 단순하게 패턴화되어 화려하고 장식적이지만 엄격한 대칭 구 조로 되어 있다. 이에 비해 고구려의 금동관은 그러한 정제된 미적 조화를 포기하고 비대칭적인 구도와 즉흥적인 생동감 으로 신명의 힘을 표현하고 있다.


백제의 무령왕이 썼던 〈무령왕 금제관식〉4역시 금판 중앙 상단의 연화문을 중심으로 인동문의 줄기가 화염문의 형태를 이룬다. 이러한 관식은 언뜻 기원전 300년경 그리스의 한 묘지 입구에서 발견된 〈팔메트 석판〉5 과 비슷하지만, 종려나무 잎사귀를 부채꼴로 펴 엄격한 좌우대칭을 이루는 팔메트 왕관 과 달리 무령왕 금제관식은 꽃과 불꽃이 결합하여 하늘로 치 솟고 있다. 여기에 127개의 작고 둥근 영락이 달려 있어 움직임 에 따라 빛의 반사가 일어나며 신비감이 극대화된다.
동양철학에서 모든 생명은 근원적으로 음의 기운인 물과 양의 기운인 불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물이 응고하고 수렴하는 작용을 한다면, 불은 하늘로 상승하고 분출하는 작용을 한다. 힘찬 신명의 에너지는 불의 속성이라 할 수 있고, 이 때문에 한국 고대 공예의 문양은 기본적으로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형태로 조형화된다. 여기에는 땅의 속성인 경직된 물질성을 불태워 하늘로 승화하려는 염원이 담겨 있다.
백제 금동대향로: 접화군생의 유토피아
향로는 향을 피울 때 쓰는 그릇으로 종교 의식을 거행할 때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한다. 향로 중에서 뚜껑이 산 모양인 것을 박산향로라고 하는데, 이는 고대 신선 사상에서 산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장소라고 생각한 데서 착안한 것 이다. 박산(博山)은 바다 가운데 불로장생의 신선이 산다는 전설적인 산으로 봉래산, 영주산, 방장산의 삼신산을 가리킨다.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은 죽는 날까지 삼신산을 동경하며 가고 싶어 했다는 일화가 있으며 동이족을 계승한 한국은 원래 신선 사상의 발원지다.

1993년 부여 능산리고분 근처에서 발굴된 〈백제 금동대 향로〉6 는 박산향로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향로의 뚜 껑에는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봉황이 여의주를 턱 밑에 끼고 아름다운 곡선의 꼬리를 추어올린 채 앉아 있다. 그 밑으로 연꽃 봉오리 모양의 동체는, 신선들이 사는 박산을 표현한 뚜 껑과 연꽃잎 모양의 몸체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받침대를 꿈틀거리는 용이 연꽃 봉오리를 물고 있는 형상으로 만들었 다. 봉황 아래 5명의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고 향로 뚜껑 에 해당하는 74개의 잎은 각각 산봉우리로 되어 있다. 폭포와 시냇물이 흐르는 이 평화로운 산에는 39마리의 각종 동물과 11명의 신선이 이상세계를 이루고 있다. 연꽃잎 모양으로 된 몸체에도 24마리의 동물과 2명의 신선이 조각되어 있고, 산 봉우리 사이사이에 나 있는 10개의 구멍과 봉황의 가슴에 나 있는 2개의 작은 구멍으로 향의 연기가 나오게 되어 있다.


특히 한 마리 용이 꿈틀대는 받침대는 마치 고구려 벽화의 〈황룡〉7 이 내려와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듯하다. 꿈틀대며 용솟음치는 용이 비대칭을 이루며 연꽃 봉오리를 물고 있는 형상인데, 이처럼 비대칭의 받침대는 중국 향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의 박산향로 중에서 허베이성 유승묘에 서 출토된 〈박산향로〉8 가 백제의 것과 가장 유사한데, 받침대 의 용을 너무 단순화하여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중국의 향로가 몸체와 받침대의 연결이 딱딱하고 기능적인 면에 충실하다면, 백제의 향로는 비대칭적이고 역동적인 율동감으로 꿈틀대고 있다. 이것을 단지 비대칭이나 비균제성으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이러한 작품의 미학적 이해를 위 해서는 한국의 전통춤과 음악, 그리고 고구려벽화에 담겨 있는 신명의 미의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범종: 심금을 울리는 신명의 파동
범종은 사찰의 종루에 걸어놓고 시간을 알려주거나 소리를 통해 세속에 찌든 번뇌를 맑게 정화하는 용도로 제작한다. ‘범’(梵)은 산스크리트어인 ‘브라흐마’(Brāhma)의 음역인데, ‘청정하다’ 혹은 ‘신성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12만 근의 구리를 녹여 만든 〈성덕대왕신종〉은 현대의 과학 기술로도 만들기 어려운 깊은 울림을 낸다. 에밀레종이라고 도 불리는 이 종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 흩어진 민심 을 수습하고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국가에서 만든 것이다. 한국 종은 세계적으로 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한 국인이 이처럼 종소리에 공을 들인 이유는 소리의 진동과 파장이 신명을 일깨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각이 사물의 형태를 인지하게 한다면, 청각은 음의 파장을 수신하게 한다. 시각이 현실적 감각이라면, 청각은 정신적 감각이기에 깊은 울림의 파동이 마음을 공명시키면 우리 내면 의 신명이 깨어나는 것이다.

한국의 범종은 종을 매달기 위해 고리 형식으로 만든 용뉴(龍鈕)의 용의 형상을 비대칭으로 만드는 게 특징이다. 〈성덕대왕신종〉의 용뉴9 는 한 마리의 용이 대나무를 짊어지 고 있는 형상으로 비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다. 용의 얼굴은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듯하고, 용의 몸통은 세치한 비늘로 덮인 채 우람한 근육이 꿈틀거린다. 오른발을 뒤로 힘차게 구 부려 발톱으로 차는 듯한 용의 동세는 차가운 청동에 온기와 생동감을 준다. 용뉴에 붙어 있는 특이한 음통은 만파식적 (萬波息笛)을 형상화한 것이다. 만파식적은 신라를 지키는 호국신이 된 김유신과 문무왕이 합심해 동해의 용을 시켜 내려 보낸 대나무 피리다. 전설에 의하면, 이 피리를 불면 적이 물 러가고 병든 사람이 완쾌되었으며, 가뭄에 비가 내리고, 장마 에는 비가 멈추었다고 한다.

중국의 종에도 용뉴가 있는데 〈원대 철제 범종〉10에서처 럼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등지고 웅크린 형상이다. 중국 종은 한국 종과 달리 두 마리가 완전히 좌우대칭 구조로 되어 있 다. 세계의 모든 종의 고리는 좌우대칭이지만, 한국 종의 고리만 비대칭이다. 또 〈성덕대왕신종〉의 소리의 비밀은 종의 두 께가 일정하지 않아 생기는 맥놀이에 있다. 맥놀이는 음의 주파수가 다른 주파수와 하나로 합쳐지지 않고 서로 놀이를 하 는 현상이다. 이에 따라 소리가 일정하지 않고 놀이하듯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종의 몸체에는 좌우로 〈공양비천상〉11이 새겨져 있는데, 연꽃을 손에 들고 연화좌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우아하게 하늘을 나는 이 선인은 꽃과 구름과 불꽃의 형상을 머금은 문양으로 둘러싸여 신비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이 문양은 불 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차가운 청 동에서 따스한 온기와 촉각이 느껴진다.


현존하는 범종 중에서 가장 오래된 〈상원사 동종〉 역시 용뉴가 굳센 발톱을 가진 한 마리의 용이 비대칭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종의 몸체에는 〈주악비천상〉12이 새겨져 있는데, 두 천인이 무릎을 꿇고 천의 자락을 흩날리며 생황과 비파를 연주하는 모습이 경쾌하기 이를 데 없다. 구름을 타고 있는 천의가 식물 줄기로 이어져 불꽃처럼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 는데 이러한 율동적인 미감은 고구려 벽화의 〈주악비천도〉13 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한민족의 시원과 더불어 형성된 고대 신명의 미 의식이 통일신라 시대까지 계승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 므로 서양미술에서 고전은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시작된 정 제된 조화와 황금비례의 아름다움이라면, 한국 미술에서 고 전은 고구려 벽화에서 시작된 ‘비정제되고 역동적인 신명의 멋’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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